존 카터 코벨은 미국의 동양 미술사 학자이자 일본과 한국 역사와 문화의 연구자이다. 컬럼비아대에서 일본미술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백인 최초의 일본학 박사이기도 하다. 일본문화를 연구하다가 그 근원인 한국문화에 심취해 깊이 있는 연구활동을 벌였다. 그녀는 1978년부터 1986년까지 말년을 한국에서 머물며 동서양 예술사를 넘나드는 폭넓은 시야로 한국문화를 탐색하는 1천4백여 편의 글을 남겼다.
이 책은 일본에 남겨진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 이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우리의 문화재가 일본에 남아 있는데 특히 한국에 거의 남이 있지 않은 '고려 불화'가 여말 선초 왜구의 노략질에 의해 대거 일본으로 넘어가서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되었다는 주장이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한 조선 초기 억불 숭유 정책에 의하여 수많은 불교 미술품은 사라 졌지만 세상에 남겨진 대부분의 유물이 일본에 고스라니 원본을 보존하고 있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법륭사(法隆寺, 호류지)
특히 저자는 한국 무속과 일본 신토의 비교를 비롯해 아스카문화를 꽃피운 백제의 불교전파와 백제미술의 보물창고인 일본 나라의 법륭사를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일본 법륭사(法隆寺, 호류지)는 일본 나라현(奈良県) 이코마군(生駒郡) 이카루가초(斑鳩町)에 위치한 사찰로,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세운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607년에 창건되었으며, 금당(金堂), 5중탑(五重塔) 등이 있는 서원(西院)과 몽전(夢殿) 등이 있는 동원(東院)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호류지의 건축물은 호키지(法起寺)와 함께 1993년에 '호류지 지역의 불교건축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으며 일본 법륭사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로,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법륭사(호류지) 금강 역사
금강역사는 불교의 수호신으로,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하며 손에 금강저를 지니고 있는 불교의 수호신이나 보살로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문의 좌우에 서서 수문신장(守門神將)의 역할을 한다.
우선 법륭사가 거의 천사백년 전에 창건되었음을 고려하면 목조 조각의 보존 상태는 놀랍도록 양호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금강역사 조각 또는 부조는 중국의 것과 상당히 다름을 알수 있는데 그에 반하여 법륭사 중문에 서있는 금강 역사는 석굴암의 것과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문헌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저자의 주장대로 법륭사가 고대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 졌고 조각품은 아예 한반도에서 제작되어 옮겨진 것이라면 유사한 시대에 제작되었을 두 작품이 서로 닮아 있는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생물학적 관점으로 종의 생성 원점에서는 격렬한 유전적 변화로 인하여 원본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매우 크게 변형된다. 그러나 종의 원류를 가지고 이주한 다른 지역의 친척들은 근원 유전자를 원본대로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어 시간이 지난 후 종의 고향에 남아 있는 것보다 예전 것에 더 가까운 특징을 지니게 된다.
인류학적으로는 유대인이 수천년을 방랑했지만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의 원주민보다 더 고대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것과 닮아 있다. 유전학이나 역사의 근원은 다르지만 결국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고대 백제 문화는 변형되어 지금은 자취를 찾기 힘들지만 일본에 남아 있는 문화와 예술품은 당시의 특성을 고스라니 품고 있는 이유이다.
앞서 기술했던 것처럼 코벨은 역사의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현재 남아 있는 미술품 만으로 고대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연구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에 남아 있는 한국미술'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이다. 국내에서도 한일 고미술 역사와 양국의 문화의 근원을 밝혀 줄 연구가 풍성히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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